컨텐츠 바로가기


board


현재 위치

  1. 게시판
  2. 차와 이야기

차와 이야기

차와 이야기

자사호의 내력
제목 자사호의 내력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08-11-20 01:11:17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776
  • 평점 0점
 

중국의 다구는 차의 제조방법이 달라지는데 따라 변화해 왔는데 대체로 당대는 고풍스러웠고 송대는 아름다웠으며 명, 청대는 단아하였다.


그 중에 의흥(誼興)에서 만든 자사다구는 차문화의 발전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 의흥에서 만든 자사다기를 선도경자(宣陶景瓷)라고 한다.


의흥의 옛 이름은 형계(荊溪)인데 형계하(荊溪河)에서 그 이름을 땄다고 한다. 그러나 북송의 태종 조광의(趙光義)의 휘와 같아서 이름을 의흥이라고 고쳐 부르게 된 것이다.


의흥에는 도토가 풍부했는데 짙은 자색에 붉은 빛을 띤다고 해서 자사라 불렀으며 홍, 녹, 황, 백색 등의 색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오색토라고도 불렀다.

사실 아직도 자사기가 누구에 의해서 나왔는지는 고증이 되질 않았다. 다만 자사기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명나라 중기부터이며 당시의 자사기가 실물로 보존되어 있고 기록도 남아 있다.


중국 다서 가운데 자사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만력(萬曆) 15년 허차서(許次糸+于)의 ‘다소(茶疏)’이다. “과거 공춘의 차호와 근래 시대빈이 만든 것이 모두 세인에게 귀히 여겨진다. 이들은 모두 거친 모래로 만들어져.....손가는 대로 만들어 놓으니 대단히 정교하다.” 고 했으니 여기서 공춘은 바로 자사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인물이다.


‘양선명도록(陽羨名陶錄)’에는 “공춘과 오이산은 집안의 동복이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오이산이 금사사에서 공부할 때 공춘이 절의 스님이 도토로 기와를 만드는 것을 보고 모방해서 사호(砂壺)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차의 향을 진하게 하고 보온도 더 잘 되어 공춘의 사호를 살려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는 것이다.


공춘을 시조라고 본다면 시대빈은 대가라고 할 수 있는데 시대빈은 4대 차호제작 전문가 중 한 사람인 시붕(時朋)의 아들이다. 그는 처음에 공춘의 호를 모방했으며 그 모양은 공춘 것보다 더 컸다. 그러나 차관에서 우연히 사람들의 차에 관한 얘기를 듣고 의흥으로 돌아와 작은 차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차호는 “아름답기보다는 소박하고 우아한 멋이 있으며 그 오묘함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니......전후의 많은 유명 작가들이 이를 수 없는 수준이더라.”고 전해진다.


중국에 사는 어떤 한국인의 블로그에 보면, 중국은 큰 자사호를 사용하는데 한국에서는 작은 자사호를 선호하는 이유가 상인들이 한국인 취향에 맞추어 중국 자사작가들에게 주문을 해서 그렇다고 나름대로 분석해 놓았는데 그 뒤에 쓴 얘기가 엉뚱하였다.

중국 자사호의 전통을 제대로 배워서 사용해야지 한국 차인들 마음대로 해서 되겠냐고 약간 흥분해서 글을 써 놓았다. 큰 자사호를 사용하더라도 차를 조금만 넣어 우리면 되지 않냐고 억지스런 말까지 덧붙여 놓았는데 역사에 전혀 무지할 뿐만 아니라 자사호의 양호를 생각해도 차를 조금만 넣어서 계속 우리면 자사호의 일부만 색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전통적으로 자사호가 대호도 있지만 무이 암차를 마시는 경우엔 작은 차호를 선호했다는 걸 그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의흥의 자사호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의흥이 중국 고대 명차의 산지로, 시인 려동(廬仝)은 그의 시에서 “천자가 함선차를 맛보지 않았으니, 백초가 감히 먼저 꽃을 피우지 못하는구나”(전당시)라고 찬미했다. 또 모계씨족 사회에서부터 의흥에 도자기 제조업이 존재해왔고 명나라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곳에는 없는 자연적 환경과 풍부한 자사가 의흥의 자사 예술을 꽃 피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자사 도토의 재질은 내열성이 강해서 송나라 때 소동파가 자사 제량호로 차를 달이면서 “솔바람과 대나무 화로가 제호(提壺)를 서로 부르네.”라고 읊었던 시구에 잘 나타나 있다. 겨울에 자사호를 불 위에 올려놓고 차를 달이는 것이 일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자사호, 선도경자는 중국의 차 문화에 필수적인 것이었으며 아름다운 도자예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차 문화의 진화와 더불어 예술적 정취를 더욱 높여주는 예술품이 되었다.

첨부파일
비밀번호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목록

삭제 수정 답변

댓글 수정

비밀번호

수정 취소

/ byte

댓글 입력

이름 비밀번호 관리자답변보기

확인

/ byte


*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