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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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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빈 말
제목 봄밤의 빈 말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09-03-17 03:38:16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830
  • 평점 0점
밤 늦게 교육방송의 공감 스페이스를 보았습니다.

가끔씩 보는 프로그램인데, 음악성 있는 아티스트들이 공개방송으로 연주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을 인정받는 연주가나 가수가 많이 출연하여 보는 재미가 쏠쏠한 프로입니다.

오늘은 장기하라는 가수가 나온다기에 작정하고 보았는데 들리는 소문이 틀리진 않았습니다.

가사도 그렇고 연주도 우리 세대에 공감이 가는 음악이었습니다.

산울림과 배철수의 느낌도 좀 나고 송창식의 느낌도 있었구요.

'별일없이 산다'는 노래도 참 좋았습니다.

'싸구려 커피'라는 곡도 있더군요.

 

음료에도 트랜드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와인을 모르면 마치 문화인이 아닌 듯, 온 동네가 와인 이야기로 시끄럽더니 요즘은 또 커피로 난리더군요.

최근에 책을 구입하면서 '모든 요일의 카페'라는 책도 같이 구입해서 읽어보았는데, 우리 시대의 커피문화와 많이 달라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저도 70년대 말부터 커피에 한 때 매료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름 커피를 잘 우린다는 다방의 주방장에게 블랜딩의 비밀을 알아내기도 하고 각종 커피 원두의 산지별로 맛의 특징을 노트해두기도 하고 원두를 구해서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는 열정을 가졌었는데 지금 처럼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아서 원두도 구하는 한계가 있었고 배전하는 기계같은 것은 엄두도 못 냈었지요.

그래도 드립식의 커피는 촌스럽다는 생각에(당시만해도 대부분 다방에서는 드립식으로 커피를 추출했습니다) 커피 전문점에서 주로 사용하는 사이펀식 커피를 애용했습니다.

사이펀을 직접 구입해서 밤에 파란 불꽃의 알콜로 커피를 내리면 무척 행복했었지요.

동숭동의 어떤 커피 전문점에서는 블루마운틴을 당시 한 잔에 1만원을 받기도 할 정도로 좋은 커피가 귀했던 시절입니다.

애호가들끼리 이게 100% 블루마운틴이 맞는지, 어디에 가면 진짜 블루마운틴 원두를 살 수 있다는 둥, 그런 정도가 당시 애호가들의 한계였습니다.

사이펀 커피를 제일 먼저 한국에 소개한 분이 '공간'사를 운영했던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었다는 얘기도 있고, 그래서 공간사에 인연이 있던 선배를 따라 지금 현대사옥 근처에 있는 공간사에 가서 커피도 마시곤 했습니다.

공간사에는 직원들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작은 방이 있었고(노출 콘크리트의 천정이 당시에는 새로웠습니다) 직원들은 쿠폰을 가지고 커피를 마시곤 했습니다.

 

사이펀 커피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 80년대 말에 프랑스에 갔었는데 거기서 에스프레소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런 커피도 있구나 싶었지요. 그리고 파리 사람들이 '엥 까뻬 크렘므, 실 부 쁠레' 라고 주문하는 '카페 라떼'도 기계의 뜨거운 증기로 우유를 뽑아서 주는데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저는 없는 돈이지만 독일 KRUP사의 소형 에스프레소 머신을 거금을 들여 구입했고 아직까지도 잘 쓰고 있습니다.

이후로 파리의 생활은 노천카페에서 에쓰프레소 한 잔 마시는 일로 모두 보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도 간혹 커피 마실 일이 있으면 저는 에쓰프레소를 즐겨 합니다.

 

제 편견은 커피를 마시는 멋은 사이펀식이고 맛은 에스프레소라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환경이 예전보다 월등히 좋아져서 못구하는 커피도구와 원두가 없더군요.

그러다보니 진정한 커피 한 잔의 멋과 운치보다는 어떤 로스팅 머신(프로바트 엘5 라는 머신은 로스팅 기계의 벤츠라네요.)을 쓰고 어떤 커피드립 주전자를 사용해야 된다는 둥, 프렌치 프레스가 어떻고 핸드밀은 어디 것이 좋고, 보뎀이니, 브리카 시스템이니, 커퍼니, 바리스타니 해가면서 도무지 커피를 마시는데는 별 소용없는 용어로 괜히 커피 잘 마시고 있는 사람들의 기를 죽입니다.

세대가 틀려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커피' 하면, 조용한 음악과 조도 낮은 불빛 아래 알콜램프에서 끓어오르는 사이펀 커피 한 잔, 책 읽는 분위기가 떠오르고 이성복이나 정호승 같은 시인의 시집이 떠오릅니다. 그런 조촐한 커피 한 잔에 만족하며 살던 세대이기 때문일까요.

언제부턴가는 아무리 분위기 좋은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더라도 그 실내의 답답함을 못견뎌합니다.

차라리 밖에서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멀리 풍경을 보며 야외에서 마시는 커피가 더 맛이 있어졌답니다.

모든 요일의 카페 저자는 제일 곤혹스러운 게 어디 가면 종이컵 커피나 오래 데워 둔 커피를 대접할려고 할 때랍니다.

그래서 어떤 핑계를 대고는 그걸 안마신다고 하네요.

제가 그 책을 읽으면서 속으로 그랬습니다. "너는 아직 하수다. 전국의 유명 커피점을 모두 섭렵하고 모든 커피를 평하고, 커피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너는 아직 한참 하수다"

고수가 되면 그런 차원은 넘어서야지요.

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식은 커피도 마시고 자판기 커피도 마시고, 오래되어 쿰쿰한 맛만 나는 원두로 만든 커피도 마실 줄 알아야 그 때 진정한 커피의 고수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뭔 얘기를 할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사실 쓰고 싶은 글이 있었는데 엉뚱한 얘기로 흘렀습니다.

그렇습니다.

너무 유행에 민감한 게 탈입니다.

저도 유럽에서 조금 살아봤는데 그 사람들이 와인을 가지고 그렇게 별나게 떠들지도 않고 커피를 가지고도 요란을 떨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인 소믈리에가 되려고 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커피 바리스타가 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즐깁시다.

사물에 끄달리지말고요.

흙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하고, 금부처는 불을 건너지 못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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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현종 2009-04-22 13:57:41 0점 댓글 수정 댓글 삭제 스팸글 동감합니다
    전 커피도 모르고 와인도 모르지만 그냥이란 말에요
  • 이정희 2009-04-26 19:20:16 0점 댓글 수정 댓글 삭제 스팸글 Ditto.동감해요.
    요즘 사무실마다 에스프레스 머신이 유행이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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