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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이야기

차와 이야기

다도정신에 대해서
제목 다도정신에 대해서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09-11-02 16: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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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005
  • 평점 0점
어제, 오늘 보고 있는 책이 있다.

프랑스 작가인 뮈리엘 바르베리(Muriel Barbery)의 ‘우아한 고슴도치(L'Elégance du Hérisson)'. 우아한 고슴도치라니! 읽어보면 안다.

54세의 그렇고 그런 중년의 홀로 사는 아파트 수위인 르네, 그 아파트에 사는 전직 장관의 딸인 천재소녀 팔로마가 등장한다. 프랑스 아파트의 수위는 대체로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프랑스에서는 수위를 꽁시에르주(Concierge)라고 부르는데, 아파트 관리인 정도로 보면 되겠다.

르네는 겉으로는 못생기고 뚱뚱하고 중학교 중퇴인 여성이지만 프루스트와 톨스토이와 스탕달, 에미넴까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블레이드 러너까지, 라파엘과 베르메르에서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와 감독 오즈 야스지로까지를 섭렵하고 아시아의 문화, 특히 일본의 다도나 바둑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런데 그 부유층이 사는 아파트에서 일반적인 아파트 관리인의 수준에 맞추느라 아파트 거주인들을 대할 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게 애쓰는 인물이고, 12세 천재소녀인 팔로마 역시 천재임을 감추기 위해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2등인 학생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래도 1등을 하는 조숙한 소녀다. 이 소녀는 13세가 되는 자신의 생일날 자살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그 천재소녀 팔로마가 아파트 관리인인 르네가 범상치 않음을 알게 된다. 새로 이사 온 일본인 오즈 씨가 등장하는 어디쯤부터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결국 작가인 뮈리엘 바르베리의 생각과 그녀의 문학적 배경이 르네와 팔로마의 생각 속에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한국어판 서문에 자신은 아시아의 문화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일본을 좋아하는 게 역력하다. 책은 읽어 볼 만 하다. 그러나 작가의 수준은 서구인들이 아시아를 보는 오리엔탈리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마치 우리가 서구의 겉만 보고 파리나 뉴욕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르네는 커피를 끓여놓고도 마시는 건 녹차인데, 이 쯤에서 다도에 대해서 한 마디 한다.

일본 메이지 시대의 선각자로 일컫는 오카쿠라 덴신, 그는 오카쿠라 가쿠조라고도 한다. 이 오카쿠라가 1906년에 다서(茶書)의 영문판 ‘The Book of Tea'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이 미국에서 한마디로 ’먹혔‘던 것이다.

르네는 오카쿠라의 책을 인용하는데, 13세기 몽고의 중국대륙 침략으로 가장 안타까운 일이 송나라의 다도가 말살된 것이라고 했다면서, 다도의 정신은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정신적으로 대단한 경지를 경험할 수 있다는 오카쿠라 다도정신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이 오카쿠라 덴신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먼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오카쿠라 덴신은 근대인의 표상이다. 그의 글은 일본의 교과서에도 실려있고 지금도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의 근대미술을 개척한 인물로 일본 미술사에서는 비중이 크다. 도쿄미술학교의 초대교장을 지냈고 그래서 미술사 관련 책에 보면 자주 이름이 오르내린다.

미술 분야 뿐만 아니라 문필가로서 1904년에 미국에서 ‘일본의 각성(The Awakening of Japan)'이란 책을 냈는데, 그 책에서

“조선의 시조 단군은 일본의 시조 아마테라스의 아우 스사노오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조선은 일본의 제14대 천황 주아이의 황후, 신공이 정벌군을 파견하여 삼한 땅을 정복했던 3세기 이후 8세기에 이르는 500년 동안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고유의 속주(original province)였다. 따라서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조선을 식민지로 재지배한다 하여도 그것은 침략이 아니라 역사적 원상복귀일 뿐이다.”고 거의 소설 같은 ’썰‘을 푼다. 또

“조선의 고분에서 나오는 출토품들이 일본 고분의 출토품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것만 보아도, 일본이 태곳적부터 이미 조선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하면서 아전인수격의 이야기를 널어 놓는데 이 인간의 글이 당시 미국의 지도자급 인사들에게 많이 읽혔다는 사실이다.

역시 일본 근대화의 선각자로 불리는 니토베 이나조가 1900년에 내 놓은 영문판 ‘무사도(Bushido)'와 함께 ’일본의 각성‘은 미국의 주요 인사들에게 일본을 무척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그 결과로 1905년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암 하워스 태프트와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 사이에 맺어진 태프트-가쓰라 밀약에서 한국의 식민화를 미국이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필리핀을 먹고, 일본은 한국을 먹는데 서로 모른 척 해주자’는 그야말로 국제적인 룰도 없이 지들 마음대로 사바사바한 밀약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뒤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씨어도어 루즈벨트가 있었는데 그는 위에 언급한 책들을 여러 각료들에게 읽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그런 책들을 보고 일본의 무사도 정신과 다도 정신에 매료되었고, 그 책에 쓰인 한국이라는 나라는 얼마나 우습게 보였겠는가.

 

앞에서 오카무라 덴신이 애통해했다는 몽고의 침략으로 잃어버린 중국 송나라의 다도이야기와 그의 아시아와 일본의 미술에 대한 수준있는 미의식과 이웃나라 침략을 정당화하는 가당찮은 그의 의식을 보자면 도대체 이 인간의 모순된 정신은 거의 병리학적인 고찰 수준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움과 침략이 어떻게 한 인간의 머리 속에서 공존할 수 있나 고민해보자면 사실 많은 예가 있을 수 있다 싶다. 잠깐 생각해도 할복자살한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끼오나 도자기 전쟁이라고 하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인간들도 극단의 미의식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카무라 덴신이 그의 책에서 소개한대로 일본의 다도는 무라다 주코의 ‘선다일미’, 다케노 조오의 ‘일기일회’, 센노 리큐의 ‘와비’ 등의 그럴듯한 다도 정신을 자랑하고 있는데 뭉뚱그려 일본의 다도 정신은 ‘화경청적(和敬淸寂)’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조화롭고 서로 공경하며 몸과 마음을 맑게 하며 고요한 안팎을 가진다는 뜻인데, 뜻은 참 번지르르하다.

침략과 전쟁, 약탈, 배신, 음모, 학살을 밥 먹듯이 한 일본의 역사를 볼 때 정신과 행동이 일치가 안되는, 禪茶一味가 아니라 邪茶一味의 일본 다도정신을 보게 될 뿐이다.

 

이런 일본의 다도를 띄엄띄엄 배워 와서 한국에도 마치 오래 전부터 다도라는 것이 있었다는 듯이 여러 사상에서 빌려와 억지로 끼워 맞추어 만들어가는 한국의 다도라는 걸 보면 뭣 하는 짓인가 싶다. 차라리 우리는 먹고 살기 힘들어 다도라는 건 없었는데 이제부터 한번 만들어보자고 하는 편이 솔직한 일이다.

차의 정신이 쓸데없다는 뜻은 아니다. 차란 다른 음료와 달리 인문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차의 정신과는 전혀 상관없이 겉치레와 말로만 다도정신을 얘기하는 누추하고도 추악한 일부 차인들의 행태를 보면 차라리 다른 동네에 가서 그러고 살 것이지 하필이면 차 동네에 와서 개폼을 잡고 영토싸움을 하느냐 말이다.

차를 좀 마신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다도정신이 어떻고 하면서 앞서 간 훌륭한 차인들의 어록을 한 마디씩 인용하면서, 마치 차를 마신다는 것이 제 자신의 인품도 덩달아 높아진다고 착각하는 것 아닌가 싶다.

제발이지 차의 정신은 그만 덮어두고 그냥 마셔라!

차를 마시면 저절로 고매해지는 것이 아니라 고매한 인품으로 마시는 차가 다도정신인 걸 좀 알았으면 싶다.

 

허영과 욕심, 파벌과 거짓전통, 가식과 권위, 우월감...뭐 이런 스노비즘 같은 것 버리고 순수하게 차를 마시다보면 저절로 다도정신은 실천이 되고 새로운 정신이 싹트게 된다.

아직 그럴 듯한 수준이 안 되면 다도정신 같은 걸 운운하지말고 조용히 차를 마시면 좋겠다.

‘우아한 고슴도치’를 읽다가 문득 오카쿠라 덴신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사가에서나 차인들 사이에서 너무 좋은 이미지로 자주 인용되고 있고(얼마 전에 소개한 호남흑차 책의 역자도 오카쿠라 덴신에 대해서 언급한 대목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근대화의 우상으로 존경받고 있지만 우리의 처지에서 보면 불쌍놈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런 인간류들을 따르고 비슷하게 행동하는 우리나라의 망종들이 있는데 무슨 라이트라고도 하더라만은 여기서 언급할 애기는 아니니 그냥 넘어간다.

 

아무튼 험한 세상에서 조용히 차나 마시며 살 일인데, 차 동네에서도 밸이 꼴리는 행태들이 보이니 또 못 참는다. 병폐다.

움베르트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이란 글이 있는데, 그리 하기가 참 힘들다.

역시 내공이 부족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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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란추 2009-11-07 10:04:55 0점 댓글 수정 댓글 삭제 스팸글 제가 위의 움베르트 에코의 책이 있습니다. 우아한 고슴도치라는 책은 제목만 읽어봤는데 그 책 속에 그런 얼토당토 않은 내용이 들어있다니 참 기분 나쁘군요. 전공이 일본어라서 한 번 읽어봐야 겠군요
  • 대표 관리자 2009-11-10 23:38:45 0점 댓글 수정 댓글 삭제 스팸글 네, 그 책을 보시면 작가가 일본에 푹 빠져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차의 책\'이라는 오카무라 덴신의 책도 번역되어 나와 있습니다만 책의 내용이야 일본다도를 서방에 소개하는 글이지만 그 사람의 역사적.
  • 대표 관리자 2009-11-10 23:41:17 0점 댓글 수정 댓글 삭제 스팸글 ..역사적인 행적이나 사상이 완전히 극우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지요. 우리 입장으로는 흔쾌히 볼 수 있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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